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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26 14:16
마음으로 시작하는 한의학적 양생법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434  

중국 명조(明朝)말에 의학종사(醫學宗師)라는 칭송을 들었던 명의 장경악(張景岳) (1563~1640)은 저서 유경(類經)에서 도도한 양생론(養生論)을 펼쳤다. 그 중 일부분을 인용한다. “지금 사람들은 단지 금욕이 곧 양생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대로 된 양생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마음 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면 氣가 마음을 따라 흩어지게 되고 기가 흩어져 모이지 못하게 되면 精도 따라서 없어지게 됨을 알지 못하고 있다. 석씨(釋氏)가 탐욕자들을 징계하여 말하기를 ‘음욕(淫慾)을 끊는 것이 나쁜 마음을 끊는 것보다 못하다. 사심(邪心)을 버리지 않고 음욕만 끊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욕망을 억제하는 요체를 깊이 터득한 것이며, 또한 양생의 학문에 입문하는데 족히 일조를 한 것이다. 
 

장자양(張紫陽)이 말하기를 ‘마음은 신(神)을 부릴 수 있고 신도 마음을 부릴 수 있다. 눈은 마음이 노니는 집이고 신은 눈에서 노닐면서 마음을 부리니, 마음이 안정을 찾으려면 반드시 눈부터 제압해야 한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은 神을 맑게 보존하는 것은 마음에 있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은 눈에 있다는 말이다.
 

양생이란 현대식으로 말하면 장수하는 방법을 말하는데 장수하려면 왜 금욕이 중요하며 성적인 금욕이 진정한 금욕이 될 수 없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견물생심(見物生心)은 인간의 당연한 반응인데 이것이 용납될 수 없는 욕망이란 말인가? 性마저 상품화하는 대중 소비 사회에서 범람하는 모든 상품은 미디어를 통해 현란한 유혹을 한다. 설상가상으로 성적인 이미지를 상품 내에 무의식적으로 주입하기도 하는데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을 장경악은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장수의 목적을 온갖 쾌락을 추구하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의미를 두는 현대인에게 그가 원했던 장수의 의미를 돌아보자. 장수하는 데에 역행하게 되는 현대인의 심리적 상태는 무엇인가를 뒤돌아보며 현대적 장수법의 허실(虛實)을 집어보고 욕망의 손익(損益)을 따져 보자, 경악의 방식으로.
위의 짧은 문장 속에도 ‘정’(精), ‘기’(氣), ‘신’(神)이란 용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지금은 생소해졌지만 한자권에서는 아주 흔한 이 용어들은 ‘장수 유전자’, ‘체세포’, ‘면역체계’, ‘생명공학’, ‘유전자 조작’ 같은 단어가 유행하듯이 2천년 이상 그 의미가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하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악은 황제내경 소문(黃帝內徑 素問)에 주(註)를 다는 형식으로 그의 주장을 펼쳤는데 내경의 양생법은 정신적인 면이든 환경적인 면이든 자연의 순환 원리에 순응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소박하게 하여 탐욕과 망상을 없애면 몸 안의 진기(眞氣)가 화순(和順)하여 지고 정신도 안으로 지켜지니 병이 어디로 침입하겠는가” 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경악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주장하였다.
복잡하게 움직이는 일상 속에서도 안정할 줄 알고 바쁜 상황에서도 한가한 틈을 낼 줄 안다면 현인(賢人)의 삶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으니, 장수의 진정한 의미는 육체의 생명연장에 두기보다는 자연의 순환 법칙에 순응하여 정신적 풍요로움 속에서 더불어 맞이하게 되는 삶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깨우친다.
 

경악은 문장이 뛰어나고 박학 다재하였다. 다른 의가(醫家)의 학설을 평론하는데도 뛰어나 재주를 믿고 자신을 대단하게 여긴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그의 명쾌한 문장으로 설명한 정기신론(精氣神論)의 일부를 보면, 태양의 에너지는 생명체에 에너지로 전환되어 육체와 생명활동을 제공한다. 
 

인간에 베풀어진 생명력은 부모로부터 받아 내려오는 선천(先天)의 기운과 스스로 활동하며 생명을 영위하게 되는 후천(後天)의 기운으로 나뉘어진다. 생명은 먼저 정(精)이 형성되어 태어나는 것이므로 선천은 기(氣)가 정(精)으로 변화한 것이고 후천은 영양 물질과 호흡으로 유지되는 것이므로 기가 정으로 변화한 것이다. 정과 기는 근본적으로 서로 의존하므로 정과 기가 충족하면 신(神)은 왕성해진다. 비록 신은 정과 기에서 생겨나지만 정과 기를 통솔하여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마음 속의 신이다. 정, 기, 신, 이 세가지가 합쳐진 것을 도(道)라고 말할 수 있다.
 

명쾌하게 설명한 경악의 설명도 현대인에게는 요령부득이다. 오래된 글이 어려운 것은 그 용어가 그 문장에서 의미를 지니고, 다른 문장에서는 또 그 문장 내에서의 맥락으로 용어의 의미가 달라진다. 문장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이런 서술은 사전적으로 용어를 정의하는 것이 어려워 장구한 세월동안 수많은 주석가(註釋家)를 배출해 왔다. 아무튼 그는 다시 내경에 주를 달아가며 영생의 원칙을 세웠다. 몸을 보양하는 도리는 기를 보존해야 하며 기를 보존하는 도리는 욕망의 유혹을 극복하는 마음의 지세에 있음을 계속 주장한다.
뜻이 한가하여 탐내는 것이 없으니 무슨 욕심이 있으며 마음이 평안하여 걱정이 없으니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몸은 수고스러워도 정신은 휴식하니 무슨 권태로움이 있겠는가. 기가 길러지면 반드시 순조로울 것이고 오직 욕심이 적어야만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는 것이다. 좋은 음식과 거친 음식을 다 맛있게 먹고 좋은 옷이든 나쁜 옷이든 편한 대로 입는다. 심신이 소박하면 욕망이 사람의 눈을 피로하게 만들 수 없고 눈으로 보는 것이 망령되지 않으면 음사(陰邪)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할 수 있겠는가.
 

물질의 서계에 익숙하고 동시에 욕망의 유혹에 노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현대인에게 경악의 주장은 실감할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비현실적인 가상의 세계로 받아들이기 쉽상이다. 반면 경악의 입장에서는 현 물질 위주 세계의 실상을 본다면 이야말로 가상의 세계라고 인식할 것이다. 미디어를 통한 광고의 홍수나 포르노를 포함한 영상, 영화 등의 네트워크 역시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인 것은 확실하다. 눈을 유혹하는 이러한 욕망의 추구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욕망의 끝없는 추구로 인한 고갈의 결과와 마찬가지라고 그는 주장한 것이다. 진정한 양생의 길에서 현대는 더욱 멀어진다.